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 올해 3번째 독서 > 한국 사람 만들기 1 -3부-

by happyfifty 2025. 5. 22.
반응형
제 4장
천주교의 도전

 

병자호란 후 반청숭명

명 멸망 후 소중화 

이런 조선에 서학 유입

철저한 쇄국 정책의 나라에 서학이 그것도 종교인 천주교가 자생한다는 것은 충격

천주교를 받아들인 것은 주자성리학의 보루인 사대부들 

 

청나라에 있던  마테오 리치(1552~1610, 이마두)의 '천주실의'가 조선에 유입

1611년 이수광(1563~1628) 베이징에 주청사로 방문 때 마테오 리치 만나 천주실의 등 받음 

 

천주교 본격적인 연구자 성호 이익 (1681~1763)

 

서학 학문적 관심 

천주교 교리가 불교와 유사한 미신으로 비판

 

이익의 제자

천주교 비판 계승 = 신후담(1702~1761), 안정복(1712~1791)

천주교 긍정 수용 = 정약용(1762~1836), 권철신(1736~1801)

주자성리학의 정통 퇴계 학파인 남인들이 천주교 수용

 

교황청이 제사 금지령 내리자

사대부들이 제사 거부, 조상 신주 불태움

주자성리학은 천주교를 이단으로 규정

조선 반대 세력으로 규정

 

예와 신앙

 

주자성리학 국교인 조선 초기 불교, 무속 미신, 이단으로 탄압

불교 승려, 무속인들은 천민으로 전락 

조선 후기에 사대부들이 불교, 무속 찾음 

불교, 무속이 용인된 것은 유교 특성 때문

 

유교의 이상 사회 = 예 

삼례 : 주례, 의례, 예기 = 예의범절

 

예악형정

: 유교 국가의 제도, 법체계 

: 예, 전, 율 - 세 종류 법 제정

: 당나라 현종(685~762)

   예에 대한 법 대당개원례(732)

   율에 대한 법 당률소의(737)

   전에 대한 법 당육전(738) 

: 명나라 - 대명집례, 대명률, 대명회전

: 청나라 - 대청통례, 대청율례, 대청회전 

: 조선 - 국조오례의(의례), 경국대전(주례), 대명률(율) 

 

국조오례의 

= 길례 : 왕, 조정의 종묘 대제, 사직단의 사직제

= 가례 : 왕실의 혼례, 왕세자 책봉

= 빈례 : 국장, 왕실의 상례

= 군례 : 열병, 군사 훈련

= 흉례 : 국가, 왕실이 지켜야 할 5가지 의례 

 

경국대전 

= 중앙 부서 조직 원리 

 

대명률 

= 형법 규정 

 

예 = 실천과 행동, no 마음이나 생각 

주자성리학 해석의 차이는 자유로움 

이념 재판 없음 

예의범절의 행위 중요

 

유교 국가의 헌법 = 예법, 윤리 도덕 
예법, 윤리 도덕을 어기지만 않으면 종교 자유

 

마테오 리치 

= 1582년 마카오 도착, 1601년 베이징 입성까지 서양 학문 전파, 천주실의 저술해 전파

= 1605년 베이징에 첫 성당 건립, 만력제 허락 

= 명의 사대부 서광계, 이지조, 양정균 등이 천주교인 됨 

= 예수회 선교사들은 조상 제사 등을 우상숭배로 보지 않음 : 100년간 자유롭게 포교 

 

청나라의 천주교 탄압

 

전례 논쟁 : 1704년 교황청이 중국 천주교인들에게 제사 금지 명령, but 중국내 예수회 선교사들은 허용 

유교는 마음에 무엇을 믿는 것보다 행위, 예법이 중요
천주교는 마음의 믿음, 신앙이 중요  

 

1602년 마테오 리치 제작. 곤여만국전도. 1708년 숙종 때 모사본. 서울대 보관.

 

1602년 마테오 리치 곤여만국전도 중 조선. 1708년 모사본

 

도미니크 수도회, 프란시스코 수도회는 유교의 조상 숭배를 우상숭배로 정의 

주자성리학 vs 천주교 대립 

 

이익 : 주자성리학과 천주교의 만남

 

성호 이익의 부친 이하진(1628~1682)

: 대사헌, 대사간 역임 

: 1680년 숙종 6년 경신환국 때 서인이 정권 잡으면서 남인 이하진 평안도 운산군으로 유배, 이곳에서 이익 출생 

: 1681년 부친 사망하자 고향 경기 광주 첨성리 귀향 

: 둘째 형 이잠(1660~1706)에게 학문 배움 

: 1705년 숙종 31년 중광시 합격

: 1706년 둘째 형 이잠이 부친 탄핵한 서인들과 타협 거부, 희빈 장씨 복권 주장 상소로 투옥, 고문사  

: 관직 포기, 평생 재야 학자 생활 

: 육촌 형 반계 유형원(1622~1673)과 그의 형 미수 허목(1595~1682)의 학문 계승

: 부친 이하진이 1684년 연행사로 베이징에서 가져온 수천권 물려받음 

: 예수회 신부들의 서양 학문 저술들  

 

이익은 이 책들 통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마젤란의 세계 일주 항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 등을 알게 됨 

천주실의 통해 야소(예수) 교리 파악 

but 천주교 비판 

 

"그 학문(천주교)은 오로지 천주를 숭상하는데 천주란 유교에서 말하는 상제다. 

공경해서 섬기고, 두려워서 믿는 것이 불교의 석가와 같다. 

천당 지옥으로써 악을 징계하고 선을 권장하며 두루 인도하여 교화하는 것이 야소(예수)이다. 

야소란 서양에서의 구세의 칭호다" 

 

"그들은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 책을 읽어서 저서가 수천 종에 이른다. 천문, 지리, 수학, 역법은 중국에도 없던 것이다"

 

주자학적 금욕주의와 천주교의 침투 

 

조선의 사대부들은 천주교를 수양 방법으로 채용 : 유교의 개방된 사고 

퇴계 : 지행병진 = 학문 하는 이유는 올바른 행동 하기 위해서다. 

 

정학 : 올바른 학문 = 충, 효, 멸사봉공 등 유교의 근본적인 윤리, 도덕 실천하게 함 

but 감성(욕구)가 이성을 앞서기 때문에 실천이 어려움 

따라서 지행을 병진하기 위해 이성 유혹하는 기성, 인의예지의 실천 방해하는 희로애락애오욕의 7정 제어하는 극기, 수련이 중요함 

= 퇴계의 이기이원론, 사단칠정론

= 퇴계는 이성과 기성이 조화할 수 있다는 이기일원론 비판 

= 양명학 : 왕양명(1472~1528)은 인간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 누구나 양지 통해 통제 가능하다 주장. 지행병진 아니라 지행합일 

                아름다운 빛. 나쁜 냄새 : 지 

                좋아한다. 싫어한다 : 행

                양명 : 마음이 만물의 이치인 이 -> 궁리, 극기 불필요

                퇴계 : 성이 만물의 이치인 이 -> 지행 합일 부분 있으나, 선악 행동은 의리 차원, 배우고 힘써야 가능 (선을 알고도 행치 않는 자) 

 

퇴계 
성현은 궁리 통해 마음 속으로 선을 알고, 반드시 행동 통해 선을 바깥 세상에서 이룬다 
인간의 감성, 감정 억제하는 극기와 수련 과정 통해 각자에게 주어진 성에 내재한 이를 완성하는 것이 인간의 이상 
인간의 감정, 감성 불신하는 강한 금욕주의 

 

이익 : 이성 살리고, 사심, 사욕 억제

문제는 이로 기를 누르면서 사리사욕이 일어날 틈을 주지 않는 어긋남이 없는 삶을 강조하면 할수록 극기복례 어려움 깨달음 

 

퇴계, 성호의 금욕주의 실천할수록 의지, 실천 사이의 괴리 절감하던 남인들은 천주교를 두 가지로 보게 됨 

 

1. 공서파 : 천주교 비판 - 이익의 제자 안정복 "천주교가 사리사욕 추구하게 하여 앎과 행동 간의 괴리 악화시킨다"

   "그들이 명색은 비록 구세 한다지만 내용은 오로지 개인의 사욕을 위한 것으로 도교, 불교와 다름 없다. 그들이 말하는 구세란 성인의 명덕, 신민의 일과는 공사, 대소의 차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2. 신서파 : 천주교 수용 - 스승 이익 "천주교가 금욕적인 삶을 돕는다" 금욕적인 생활에 이단에서도 배울 수 있다. 불교가 금욕에 도움 준다.  

"천주교와 유교가 하늘을 섬기는 점에서 동일하나 이쪽은 정당하고, 저쪽은 사특하다. 그래서 내가 배척한다"

 

정약용과 상제 

 

정약용은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극기복례에 도움된다고 생각 

 

주자성리학의 인간관 : 인간은 이성 완성, 인의예지 실천할 자질을 모두 소유했다. 

but 인간이 이성 완벽 구현 가능한 존재라면 모든 인간이 성인될 수 있다는 모순

현실은 도덕적 완벽주의자들도 칠정 버리고, 사단 실천 불가능 깨닫고 죄책감 가짐

 

"사람은 아무리 뛰어난 지혜 있어도 실수 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회개이다. 

공자 왈 '나에게 몇 년 시간만 더 있다면 주역을 공부하여 큰 과오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공자, 주공 조차도 실수를 하는데 평범한 사람들이야 어떻겠는가! 

주역은 과거를 회개하는 책이다. 

성인은 우환이 있으면 하늘이나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과오를 뉘우친다. 

그러므로 성인이 어찌 회개가 없겠는가?

 

회개에도 도가 있다. 

후회와 회개가 마음을 기름지게 하는 것은 더러운 거름이 논을 기름지게 하고 농사를 잘되게 하는 것과 같다. 

뉘우침은 죄책감과 과오에서 온 것이고, 잘 함양하면 덕이 생긴다."

 

주자성리학은 윤리 도덕의 완성이 목표다. 

개인 완성이나 성불이 아닌 인간관계와 사회 공동체의 완성을 추구한다. 

이를 위해 개인은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 

이성을 찾으려면 감성을 죽여야 한다. 

감성을 죽이려면 평정심 찾아야 한다. 

 

평정심 이뤄 사단으로 희로애락을 완벽하게 극복하면 

다시 사회로 나가 사람들에게 윤리 도덕 완성해야 한다. 

 

문제는 이성 찾는 궁리 과정에 사회 떠나 극기, 수련 필요

이상 사회 완성하려면 사회 떠나야 하는 점

이성 찾더라도 사람들과 관계는 순간 감성이 되살아남

 

인격 신의 도움 필요 

다산 정약용 : 극기복례 완성하지 못하는 인간의 근원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원시 유교의 인격 신, 상제 필요 

but 천주교의 신과의 차이 : 다산의 상제는 유교에서 우주의 윤리 도덕 질서를 의인화된 인의예지, 인간 역사에 개입하거나 구원하는 존재 아님 

다산은 제사의 중요성 강조 

다산의 상제는 주자성리학을 보조해 주는 존재

동시에 주자성리학과 천주교 접점 제시 

 

신앙으로서의 천주교

 

성호학파

이익의 제자들 

 

* 신후담, 안정복, 이흥영은 천주교 비판 

* 정약용은 주자성리학 + 천주교 접점 제시

* 권철신 (1736~1801)은 신앙으로써 천주교 관심 : 동생 권일신, 이벽, 정약전(정약용 형), 이승훈은 1779년 천진암 주어사에서 서학 연구 

 

1783년 말 이승훈 부친 이동욱, 연행사의 서장관(기록) 임명되자 아들 이숭훈도 동행 

이벽이 이승훈에게 베이징에 가면 천주교 신부들을 만날 것 부탁

 

1784년 3월 귀국 직전 베이징 천주교 북당에서 그라몽 신부에게 조선인 최초로 영세 받고, 베드로 세례명 받음 

방따봉 신부의 본국 보고서 

 

"하나님의 영광을 입었을 한 남성의 개종 사실을 보고한다.

그 남자의 나라는 아직 선교사가 방문한 적 없는 조선이란 곳인데 중국 동쪽에 있는 반도이다.

이 나라는 매년 종주국인 중국에 사절을 파견한다. 

이 일해이 우리를 방문하여 우리는 포교서를 전달했다.

일행 중 고관의 자녀로 아주 학식있고, 쾌활한 27세 청년은 깊이 마음으로부터 종교에 깊은 관심을 갖었다.

세례 전에는 그가 만족할 때까지 여러 질문에 대해 가르쳤다. 

 

우리는 왕이 그의 행위를 죄악시하여 국법에 저촉된다 할 경우의 결심을 확인했다. 

그는 결연히 진리라고 확신하는 종교를 위해서 어떤 고통도, 죽음도 참고 견디겠다고 고백했다. 

우리는 종법의 순결을 설명하고, 다처제를 금지한다 하니 그는 한 명의 정부인만 두고, 앞으로 첩을 두지 않겠다 답했다.

 

소현세자가 아담 샬 신부 만난 지 140년 만에
천주교를 자발적으로 공부한 조선의 선비가
베이징 천주교당을 찾아 세례 받기를 자청한 사건 

청과 국교 단절에도 연행사 통해 천주교가 조선에 전달

 

중국과 일본은 
천주교 선교사들이 수없이 파견되어 
순교와 헌신했음에도 
천주교가 자리 잡지 못함

그러나 
조선은
선비들의 지적 호기심과 새로운 사상에 대한 갈망으로 
천주교가 자생적으로 자리 잡음

 

1784년 음력 9월 한양 수표교 이벽의 집에서 이승훈은 이벽, 권일신에게 세례 시행

이후 이벽은 본격적인 전도 : 정약전, 정약용 형제, 권철신 등 양반들, 최창현, 최인길, 김종교, 김범우, 지황 등 개종

신부만 세례 가능한 것을 몰라서 서로에게 세례 시행

 

조선 최초의 가톨릭 교회 : 명례방(명동) 공동체

 

1784년 역관 김범우(1751~1787) 명례방(명동) 자기 집을 주일 예배 처소로 제공 

이벽, 이승훈, 정약전, 정약용, 권일신 형제 등 모임 

 

1785년 형조에 발각, 을사추조 적발사건 : 이벽, 이승훈, 정약용 등 양반이라 방면, 중인 김범우 고문 후 밀양 단장으로 유배, 2년 후 귀향, 고문 후유증으로 1787년 9월 14일 사망 = 천주교 첫 순교자 

 

이벽

경주 이씨 가문, 무반 가문, 조부는 호남병마절도사 부총관, 부친은 가의대부 동지중추부사 종2품

동생 이석은 좌포도대장

부친이 이벽의 천주교 신앙 버리지 않으면 자결하겠다 엄포

이벽이 끝내 배교, 이후 외부와 단절 삶

1786년 33세 요절 

 

이승훈

문중에서 천주교 배교 선언하는 벽이문 작성 강요, 1789년 평택 현감, 1791년 진산사건(신해사옥)으로 파직

 

그럼에도 천주교 확산

 

중국의 천주교는 예수회 중심

1582년 마카오 도착한 마테오 리치가 예수회 

마카오 무역 독점하던 포르투칼이 예수회 후원 

 

1633년 도미니크회, 프란시스코회가 베이징에 선교사 파송

필리핀 거점 두고 포르투칼에 도전하던 스페인이 이들 후원 

 

그러나 예수회 영향력이 커서 진입 어렵자 

도미니크회, 프란시스코회는 예수회의 조상 제사 허용을 문제 삼음 

예수회 : 유교의 부모 제사는 공경의 표시, 종교적 우상숭배 아니다 : 유교와의 갈등 배제 

중국 천주교 신자 

1600년     2,500명 

1636년   38,000명

1650년 150,000명

1692년 중국 강희제는 예수회 선교 활동 공인

 

도미니크회, 프란시스코회는 천자가 천단에서 지내는 하늘 제사, 공자 모시는 석전제, 조상 제사 모두 우상 숭배라 정의 

교황청은 전례 논쟁 시작 

 

1704년 11월 20일 교황 클레멘트 11세 칙령 

"카톨릭의 하나님은 상제, 천으로 부를 수 없다. 천주로 불러라."

 

1715년 3월 19일 교황의 칙령

"천주교인들은 조상에 대한 제사 금지한다"

 

강희제는 교황의 칙령 읽고 천주교가 불교, 도교와 같은 이단이라 정의, 천주교 선교 금지 명령

but 천주교 선교사들이 마테오 리치의 원리 따르면 선교 허용 

1724년 강희제의 아들 옹정제는 천주교 금지령, 모든 선교사들은 마카오로 추방 

 

1773년 교황청은 예수회 해산 시킴 

 

교황청과 중국 황제간 논쟁 결과

중국에서의 천주교 선교 붕괴 

 

조선의 전례 논쟁, 제사 거부 

 

1789년 10월 개종한 윤유일(1760~1795)을 상인으로 가장해 베이징 천주교 파송

프란시스코회 주교 구베아에게 조선 천주교 상황 전달 

조선 신자들이 서로 세례, 미사 소식에 선교사 파송 약속,

모든 제사 금지 전달 명령

1790년 봄 귀국한 윤유일이 이를 전달하자 많은 신자들이 천주교 떠남 

 

일부 신자들은 조상 제사 거부 

1791년 11월 전라도 진산의 사대부, 윤선도의 6대손 윤지충(1759~1791)은 1783년 과거 시험 때문에 한양의 외종사촌 정약용의 집 머물면서 명례방 동참, 귀향 후 3년간 성경공부, 정약전으로부터 영세 받음, 외사촌 권상연(1751~1791)이 권상연에게 천주교책 통해 개종 

천주교가 조상 제사 금지한다는 가르침에 조상 신주 불태우고, 그해 윤지충의 모친상 때 유교식 대신 천주교식 장례 치루자 공서파가 고발

1791년 10월 20일 상소로 조정에서 논란, 30여건 상소 

11월 8일 영의정 채제공이 윤지충, 권상연 사형 건의, 정조 윤허

11월 13일 전주 풍남문 밖(전동성당 자리)에서 33세 윤지충, 41세 권상연 참수, 가족들은 재산 몰수, 유배 

진산군수 신사원 파직, 진산군은 현으로 강등

이승훈, 권일신 체포, 천주 버린다는 약속 후 파직, 권일신은 유배지로 가던 중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 

 

사대부들은 대부분 제사 선택, 천주교 떠남 

중인, 하층민들은 제사 중요성 낮아 천주교 확산 

세종이 사당 짓고, 조상의 신주 모시는 주자성리학 개혁 400년만에 조상 제사 거부 시작 

 

청나라는 종교로서의 천주교는 배격했으나 서학으로서 천주교의 학문 수용

반청숭명, 소중화 조선은 종교, 서학 둘 다 탄압, 배격 

but 종교로서 천주교 확산 

 

천주교 박해의 시작 : 신유박해

 

정조는 주자성리학이 문명의 정점이라 생각

서학이 유행하는 이유는 유학자들이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라 분석 

 

1800년 8월 18일 정조 승하

11세 정조 차남 순조 즉위 (1800~1834)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대왕대비로 수렴청정 

1년 후 신유박해로 정순왕후 김씨의 오빠 김구주 정적 시파(천주교, 남인에 온건, 사도세자 폐위 반대파) 숙청

1801년 1월 11일 정조 탈상 동시에 정순왕후가 천주교 금지 교지 

 

시파 핵심

2월 9일 이가환, 이승훈, 정약용 체포

2월 14일 홍교만, 홍인 체포 

충청도, 전라도에서 천주교인들 체포, 한양 압송

2월 26일 정약종, 이승훈 서소문 밖에서 처형, 정약용, 정약전 유배 

권철신, 이가환 옥사

전국에서 300명 처형 

 

특히 양반과 왕실 부인들이 천주교인들 발각, 사형 당해 

신유박해 결과로 교인들은 산간벽지에 '교우촌' 형성, 화전민, 옹기장수, 박물장수로 생존

 

 

황사영 백서 사건 

 

1790년 16세 황사영(1775~1801) 진사시 합격한 수재 

정약용의 형 정약현의 딸과 결혼, 정약용의 조카 사위

1791년 천주교 개종 

신유박해로 충북 제천 배론으로 피신, 체포 직전 토굴에서 베이징의 구베아 주교에게 백서 작성 

조선 천주교 역사와 탄압, 재건 13,311자 기록

능지처참 당함 

청나라가 조선 복속하고, 프랑스 군대가 와서 종교 자유 협상 제안 

 

 

파리 외방 전교회와 조선 선교의 시작

 

1803년 12월 정순왕후의 수렴청정 끝나고 안동 김씨 득세하자 천주교 탄압 누그러짐 

순조의 장인 김조순(1765~1832) 정권 장악, 안동 김씨 시파 대거 등용 : 천주교에 온건파 

천주교회 재건 

 

정하상 (1795~1839) 

정약용의 조카,

부친 정약종, 형 정철상 신유박해 때 순교, 모친 유소사, 동생 정정혜와 생존  

숨은 천주교인들 찾아가 한문과 천주교리 배움 

1816년 10월 동지사 역관의 하인으로 베이징 방문. 1831년까지 16년간 9차례 베이징 방문, 조선에 신부 파견 요청

1825년 유진길, 이여진과 함께 교황에게 편지 발송, 1827년 교황 레오 12세에게 전달 

 

교황은 파리외방전교회에 조선 선교 일임

4년 뒤 교황 그레고리 16세는 조선을 독립적인 교구로 인정, 첫 조선 교구 주교로 브뤼기에르 신부 임명(1835년 만주에서 병사) 

1836년 1월 12일 프랑스 신부 모방이 정하상, 조신철 안내로 한양 입성

1837년 1월 샤스탕 신부, 12월 앵배르 주교 입국

 

이후 30년간 

1866년 병인박해까지 파리외방전교회는 20명의 신부 파송 

1839년 기해박해 때 앵베르, 모방, 샤스탕 3명 순교, 5명은 병사 

1866년 병인박해 때 9명 순교, 페롱, 리델, 칼레 3명만 국외 탈출  

조선 천주교인 10,000 -> 23,000명 

 

 

1839년 기해박해와 프랑스 함대

 

1839년 노론의 벽파 풍양 조씨 득세 : 천주교에 강한 반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의 빈 신정왕후 조씨 간택 

 

1839년 4월 18일 사학토치령 선포, 4월 12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9명 참수 

서울, 전주, 홍주, 공주, 원주 등에서 체포, 처형 

 

엥베르 주교, 모방, 샤스탕 신부 자수하자 8월 14일 순원왕후 김대비가 사형 명령, 새남터에서 효수 당함 

= 조선 최초 순교한 천주교 사제들 

 

8월 15일 유진길, 정하상 사형 : 프랑스 신부 입국 조력 혐의 

8월 19일 조신철 외 8명 사형 

9월 25일 처형된 유진길의 아들 14세가 배교 거부하자 교수형 

연말까지 200여명 순교 

 

7년 후 

1846년 6월 20일 프랑스 군함 3척이 충청도 외연도 무력시위 

세실 제독 (1787~1873) - 1843년 프랑스가 베트남 침략 주역 = 당시에도 프랑스 신부들에 대한 박해 막는다는 명분으로 베트남 침공, but 1842년 아편전쟁으로 중국 개방 앞두고 전진 기지 확보 목적 

1846년 5월 8일 세실 제독은 편지 전달 : 현종 실록에 번역본 남음 

 

김대건 신부

1836년 1월 병오박해 때 입국한 모방 신부는 조선인 신부 필요성, 15살 김대건(1822~1846) 최양업, 최방제 마카오로 보내 신학 교육

최방제는 3년만에 병사

김대건은 9년만인 1845년(헌종 11년) 10월 12일 조선인 최초 사제 서품 받고 충청도 강경으로 귀국   

1846년 6월 5일 백령도에서 최양업 신부, 매스트르 신부의 입국 시도 돕다가 체포

이때 세실 제독 함대 되돌아가는 중, 김대건 신부는 서울 압송 

조정은 프랑스 함대가 김대건 신부 구출 시도로 판단 

1846년 7월 15일 조정 회의에서 헌종과 대신들은 강경 대응

조정은 김대건이 라틴어, 프랑스어, 중국어 유창하고 세계 정치, 지리 해박한 것을 아까워해 회유했으나 

김대건은 배교 거절  

1846년 9월 15일 새남터에서 26세 김대건 참수

 

1847년 헌종 13년 세실 제독이 라피에르 대령에게 군함 2척 파견 , 프랑스 신부 처형에 대한 항의  

 

 

 

 

 

 

 

 

 

 

 

 

 

 

 

반응형